[sd14] 인각사, 일연스님 그리고 삼국유사 - 좋은 정보 나누기

[SD14] 군위 인각사와 일연스님 그리고 삼국유사

인각사는 경북 군위군 고로면에 자리잡은 사찰입니다. 대구에서는 운전해서 가면 대략 1시간 10분정도가 걸리는곳이니 그리 많이 멀진 않습니다. 주지스님께서 너무 좋으셔서 가끔 머리 복잡할때에 찾곤 하는데 얼마전에 바람도 쐴 겸 한번 다녀 왔습니다

인각사

우선 인각사에대해 조금 소개를 하면 인각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혜사의 말사로서 신라 선덕왕 11(642)에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였습니다. 지금이 2010년이니 거의 1500년전에 창건한 매우 오래된 역사를 지닌 사찰입니다

이곳 인각사는 삼국유사를 저술하신 일연스님께서 마지막으로 계시던 하산소였습니다. 1284년부터 1289년 입적할 때까지 만 5년동안 이 절에 머물렀습니다. 역사의 기록에서 인각사에 관련한 자료는 별로 없었으나 일연스님의 하산소가 되면서 비로도 역사의 기록속에 인각사가 등장하게 됩니다. 삼국유사도 바로 이곳 인각사에서 저술 하셨죠. 또한 일연선사는 총림법회라는 대규모 불교행사를 개최하였는데 교계의 성황이 가까운 옛날로부터 지금까지 없었던 매우 큰 규모였다고 기록되어진 것으로 보아 불교 행사중 가장 성대한 행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인각사라는 명칭은 절이 위치하고 있는 터의 뒷산 모양이 하늘에서 보면 기린의 뿔 모양이라해서 인각(기린 인 뿔 각)사라고 지어졌습니다. 여기서 기린이란 우리가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목이 긴 기린이 아니라 전설속의 동물입니다. 사슴의 몸에 말의 발굽과 소의 꼬리를 갖고 있으며 온몸에 영롱한 비늘이 덮여 있다는 상상의 동물로서 기린은 길상의 사령(, 기린, 봉황, 거북) 중 하나로 성인이 세상에 태어날 징조를 나타내는 상징의 동물로서 우리에게 희망과 성광, 그리고 행복을 전해줍니다. 이와 같은 기린의 전설과 상징 때문에 재주가 뛰어나고 지혜가 비상한 사람을 가리켜 기린아라고 부르는가 하면 신라시대에는 기린문양을 부조한 벽돌을 만들어 건축에 이용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왕을 호위하는 호위군을 기린군이라 칭하고 기린을 수놓은 기린의장기를 세워 그 위용을 떨쳤다고 하네요

보각국사 일연선사

일연선사는 고려 희종 2 (1206)에 경상도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제가 있는곳이 경산이라 거리에 종종 걸려있는 인연스님 탄생지 등과 같은푯말들을  보긴하는데 실지 정확히 어느 지역인지는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14살 때 출가를 하셨는데 이때는 고려 무인시대 때로서 스님이 출가하던해에 최충헌이 사망하고 아들 최이가 정권을 물려받을 때 입니다. 22세에 승려의 최고 고시인 선불장에서 상상과에 합격하였다고 하니 아주 어릴적부터 상당히 눈에 띄는 분이었음에는 틀림 없어 보입니다. 그 이후로 여러 사찰에 주석하시고 남해의 정림사와 지리산 길상암에도 거주하셨습니다

스님이 아마도 세상에 더 이름을 알리신 계기는 아마도 고려가 원에 예속되어 그 문화가 파급되고 원이 일본을 정복하기 위해 고려에 과중한 부담을 지우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종교란 것이 정치와 전혀 무관하게 떨어질래야 떨어지기가 어렵습니다. 종교란 다수 대중의 지지의 받는것이고 또 종교의 수장은 임금과 맞먹을만큼 다수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원에 의해 고려가 힘이 들 시기 고려왕실에서는 그 이전에 주류를 이루던 불교계를 일단 정리하고 새로운 대안을 빨리 찾아내어야 겠죠. 그게 바로 일연스님을 중심으로 한 가지산문을 핵심적인 교단으로 지원하는것에 나타나 있습니다.

아울러 일연스님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국왕의 입장과 사회적 상황에 무관심하지 않았을것입니다. 일연스님은 가지산문에 속해 있었는데 가지산문은 무인정권하에서 매우 침체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다시 부흥할 좋은 기회가 된 것이지요. 또한 일연스님은 원의 침략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은 자세를 취했는데 이는 그간 왕권이 무너지고 무인정권이었던 비정상적인 상황이 몽고의 침략으로 인해 왕정이 다시 회복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라 판단한 것이지요. 그러하니 당시의 왕권과 일연스님간에는 서로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진다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충렬왕이 일연스님을 국사로 책봉하게 되는데(1283, 스님78) 국사란 불문에 덕이 높은 사람을 왕사(왕의 스승)로 삼고 덕이 더 높은 사람은 국사로 삼았던 것으로 보아 임금의 스승 또는 나라의 큰 어른으로 삼았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국사라는 칭호는 나중에 국존이라 고쳐서 쓰는데 이는 중국의 칭호와 겹쳤기 때문에 피해서 써서 그렇다고 하니 그 당시에도 강대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삶이었나 봅니다.

1284년 스님이 79세일 때 왕의 만류를 뿌리치고 노모를 봉양하겠다며 인각소를 하산소로 하고 지내시면서 구산문도회가 같은 큰 행사도 두번이나 개최하시고 삼국유사도 집필하시게 됩니다.  

보각국사 비에 보면 스님이 입적하실 당시 에피소드가 적혀 있는데요. 1289 7 8일 새벽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주위에 모여든 제자들과 문답을 나누면서 오늘 내가 떠나려 한다고 말문을 연다음 오늘이 액일인지 아닌지 물어보니 7 8일ㅇ므로 괜찮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제자들과 문답을 다 나누시고 나서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깁니다.

“여러 선덕은 날마다 이것에 답하시오. 심하게 아프고 가려운 것과, 아프지도 않고 가렵지도 않은 것이 모호하여 가릴 수 없으리라.”

이에 지팡이를 다시 한 번 내리치고, “이것은 심하지 않은 것이오.” 하고, 또다시 한 번 지팡이를 내리친다. “이것은 바로 심한 것이며또다시 한번 법상을 내리치고, “이것은 심하지 않은 것이오하고, 또다시 한 번 법상을 내리치고는 말하였다. “이것은 심한 것이면서 심하지 않은 것이니 가려보아야 할 것이요.”

문득 자리에서 내려가 방으로 들어가 다시 작은 선상에 앉았다. 지긋이 미소를 띠며 조금 있다 수결을 해보이더니 조용히 멸적하였다고 합니다.

심하게 아프고 가려운것과 심하지 않은 것을 어찌 가려보아야 할런지요??

삼국유사

삼국유사는 활자본이며 5 2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편찬 연대는 미상이나 1281~1283년 사이로 보는 것이 통설입니다. 현재까지 고려시대의 각본은 발견되지 않았고 완본으로는 1512년 경주부사 이계복에 의하여 중간된 정덕본이 가장오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삼국유사는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 고대 사적의 쌍벽으로서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史官)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사이므로 그 체재나 문장이 정제된 데 비해,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씌어진 이른바 야사이므로 체재나 문사가 삼국사기에 못 미침은 사실이나 거기서 볼수 없는 많은 고대 사료들을 수록하고 있어 둘도 없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고조선에 관한 서술은 한국의 반만년 역사를 내세울 수 있게 하고 단군신화는 단군을 국조로 받드는 근거를 제시하여 주는 기록인 것입니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중에서 하나를 택하여야 될 경우를 가정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삼국유사를 택할 것이라고도 했었습니다.


인각사 다녀온 기념으로 간력히 인각사와 일연스님 그리고 삼국유사에 대해 적어보았는데요. 사실 이렇게 짧은글로 다 적기는 무척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또 길게 적는다고 다 읽어보실 분들도 없지요..

인각사는 조선시대 이해 거의 폐사에 가까울 정도였고 따라서 예전의 건물이나 사탑 등 주요한 문화재가 거의 대부분 소실되었습니다. 1963년에 들어서야 겨우 몇몇 사람들에 의해 중수가 이루어지고 현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위치도 도로변에 있어 휑한 느낌마저 들 정도이지요.

가까이 계신분들께서는 한번쯤 들러보시면 머릿 식히기에도 좋고 또 교육적으로도 상당히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인각사가 위치한 군위군에서나 또는 문화재청, 정부 등도 보다 적극적으로 인각사 복원에 관해 지원해서 우리의 문화유산이 제대로 보존되고 또 알려질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미지 첨부가 되다가 멈추었네요. 내일 사진을 좀 더 추가해야 겠습니다.

아... 이제 토트 글쓰기가 제대로 되네요. 이미지가 잘 안올라갔었는데 이제 다시 잘 올라갑니다. 사진 몇장 더 올립니다.

인각사에 가시면 요 두마리 삽살개가 반겨준답니다. 앞에 있는 녀석이 금강이(3개월,숫놈) 뒤에있는 녀석이 반야(2개월,암놈)입니다. 두 녀석이 결혼해서 새끼 낳으면 한마리 주신다고 하셨는데...진짜 주실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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